소주병에 생수를? “재활용도 좋지만 재사용으로 환경 지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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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이슬’, ‘처음처럼’…. 브랜드는 달라도 소주 하면 익숙한 초록색 병이 떠오른다. 이 초록색 병에 생수(먹는 샘물)를 담아 파는 곳이 있다. 생수를 소비할 때 발생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다. 소주병에 소주 대신 생수를 담겠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회사는 ‘소우주’다. 소우주는 재사용이 가능한 유리병에 주목했다. 최수환(45) 대표는 “한 번 쓰고 버리는 페트병 대신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초록색 소주병에 생수를 담는다면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세플라스틱이나 환경호르몬 걱정도 없고요”
친숙한 소주병의 반전
매년 버려지는 페트병의 양은 천문학적이다. 그린피스가 발간한 ‘플라스틱 대한민국 2.0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국내에서 버려진 페트병은 56억 개로 8만 4000여 톤에 달한다. 병당 지름을 10㎝로 가정해 세워놓으면 지구를 14바퀴 돌 수 있는 양이다.
최 대표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후 쉽게 마시고 버려지는 플라스틱 생수병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페트병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 생수를 유리병에 담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3년 소우주를 창업한 이유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페트병과 달리 유리병은 세척 후 수십 회 재사용이 가능하다.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아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거론된다. 페트병과 달리 미세플라스틱이나 환경호르몬 배출 걱정도 없다. 그래서 소우주는 유리병 생수가 ‘가장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음료 소비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왜 하필 초록색 소주병일까? 2009년 소주업계는 환경부와 360㎖ 초록색 소주병을 표준용기로 하는 ‘소주공병 공용화 자발적 협약’을 맺었다. 업체 간 소주병의 모양과 규격을 통일하고 병을 공동 제작·회수해 재사용하기 위해서다. 초록색 소주병은 10개 소주 회사가 공용으로 쓰고 있다. ‘참이슬’이 담겼던 병에 ‘처음처럼’을 담거나 ‘좋은데이’가 담겼던 병에 ‘잎새주’를 담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초록색 소주병 하나는 최소 10회 이상 재사용된다. 회수율도 높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공병 반환율은 96.4%에 달한다. 한 번 생산된 병은 대부분 회수돼 재사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소주병이 친숙한 소비자가 많은 만큼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한몫했다. 실제로 생수가 담긴 소주병의 반전에 호기심을 보이는 소비자가 많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이를 통해 유리병 재사용의 의미를 전달하고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 소우주의 목표다.
다만 소우주는 소주병을 별도로 구입해 사용한다. 소주 업체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소주병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주병 제작 업체에서 구매한 소주병을 사용하고 회수해 재사용하는 방식이다. 소우주 사무실 한편에는 회수한 소주병을 세척하고 소독하는 기계와 공간이 마련돼 있다.
‘재활용’만큼이나 중요한 ‘재사용’
물론 소주병에 거부감을 갖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다양한 소비층을 고려해 소우주는 최근 전용 유리병을 개발했다. 다양한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해 생수뿐 아니라 탄산수, 탄산음료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했다.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소우주의 생수와 탄산수는 지난 6월 열린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세계 50개국 정상들에게 제공됐다. 유리병 생수는 다양한 회의나 행사에서도 선호되고 있다. 특히 정부의 ‘공공부문 1회용품 사용 줄이기 실천지침’으로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행사에서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금지하면서 유리병 생수의 수요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회의·행사에서 사용한 유리병은 소우주가 직접 회수하고 개인에게는 생수를 박스 단위로 판매한 뒤 박스에 다 쓴 병을 담으면 택배 반품으로 회수한다. 최 대표는 “회수율을 높이고 유리병 재사용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우주의 노력과 달리 주류와 음료업계에서 유리병 사용은 감소하는 추세다. 최근 소주업계는 일회용 종이나 종이팩에 담긴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과거 식당에서 쉽게 보이던 유리병에 담긴 콜라와 사이다도 찾기 어려워졌다.
최 대표는 “예전에는 유리병을 재사용하는 게 더 이익이었는데 지금은 페트병이나 종이팩 가격이 너무 싸다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그걸 쓰는 게 더 이익”이라고 말했다.
페트병이나 종이팩을 재활용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투명(무색) 페트병은 재활용 가치가 높아 긴 섬유 같은 고품질 재생원료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500㎖짜리 투명 페트병 15개면 티셔츠 하나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색깔 있는 페트병이나 일반 플라스틱과 섞여버리면 활용도가 떨어진다. 종이팩은 양면에 비닐코팅이 돼 있기 때문에 일반 폐지와 섞이면 재활용되지 않는다. 재활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폐기물 등도 고려할 문제다.
반면 유리병의 최대 장점은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리병을 살균·세척해 다시 사용하면 유리를 녹여 새로운 병으로 만드는 재활용보다 환경에 더 유익하다. 제조와 재활용 공정에 필요한 에너지도 아낄 수 있다.
최 대표는 재활용도 좋지만 재사용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미 있는 걸 재사용하는 것이야말로 환경과 미래에 큰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유리병 생수를 통해 이런 인식 변화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언젠가는 페트병 대신 유리병에 생수를 담는 기업이 늘어나 초록색 소주업계처럼 생수병을 공용으로 제작·회수해 재사용하는 순환경제가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강정미 기자
*페트병
페트(PET)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olyEthylene Terephtalate)의 약자로 플라스틱의 한 종류다. 가볍고 강도가 우수하며 깨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다른 플라스틱보다 탄산가스나 산소의 차단성이 높아 내용물을 보존하는 데도 유리하다.
*순환경제(Circular Economy)
제품을 사용한 후 폐기하는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자원을 재사용하는 등 순환시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새로운 경제개념이다. 사용 후 배터리 등 폐제품에서 희소금속을 추출해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박스기사
폐트병 재활용률 높여라!환경부·음료업계 업무협약
투명(무색) 페트병 재활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환경부와 물음료업계가 손잡았다.환경부는 7월 5일 롯데칠성음료·코카콜라음료·서울우유협동조합·매일유업 등 7개 업체, 서울아리수본부, 한국수자원공사 등과 ‘무색 페트병 재생원료 사용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업무협약은 식품용기를 생산할 때 수거된 무색 페트병으로 만들어진 재생원료의 사용을 늘리기 위해 마련됐다. 협약에 참여한 업체들은 배출된 무색 페트병으로 만들어진 재생원료(펠릿)를 최소 10% 이상 사용한 식품용기를 생산할 예정이다. 서울아리수본부는 이미 5월부터 병입 수돗물 생산 시 재생원료로만 만들어진 페트병을 사용 중이다.
환경부는 재생원료로 만들어진 식품용기에 대한 검사(한국환경공단 수행)를 통해 품질 안전성을 확보하고 혼합 수거된 무색페트병도 재생원료로 제조할 수 있도록 해 공급체계를 확대하는 등 재생원료 시장의 안정적인 수요·공급 기반 마련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무색 페트병은 이물질 함량이 낮아 고품질의 재활용이 가능하다. 소비된 무색 페트병은 분리배출, 파쇄, 용융 과정 등을 거쳐 재생원료로 재탄생한 후 다시 페트병을 제조하는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의무 재생원료 사용률을 정해둔 상황으로 유럽연합(EU)은 식품용 페트병에 2025년까지 25%, 2030년까지 30%의 재생원료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플라스틱 포장재에 2025년까지 25%, 2030년까지 50%의 재생원료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유승광 환경부 자원순환국장은 “현재 식품용기(페트병) 생산에 부여된 3%의 재생원료 사용 목표를 2030년 30%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다른 품목에도 재생원료 사용 목표를 마련해 플라스틱 재생원료 사용이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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