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 순국 87명 수의 벗고 한복 입다…“영웅에 걸맞은 최고의 옷 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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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함성이 거리를 뒤덮었지만 기쁨의 순간을 보지 못한 채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독립투사들이 적지 않다. 그 후 79년이 흘렀지만 그들의 모습은 여전히 옥중 죄수복 차림으로 남아 있다.나라 위해 목숨 바친 독립영웅들이 죄수복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정부는 ‘광복(光復)’을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빛나는 새 옷(光服)’을 선물했다. 국가보훈부는 8월 2일 빙그레와 함께 ‘처음 입는 광복’ 캠페인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캠페인은 공훈전자사료관 내 옥중 순국 기록이 있는 독립운동가 중 수형 사진이 마지막 모습으로 남은 87명의 사진에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한복 명장이 만든 한복을 입히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유관순(201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안중근(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안창호(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강우규(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등의 독립유공자들이 포함돼 있다.
특히 대한제국의 주독·주불 공사관 참사관을 역임하고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중국 베이징으로 망명해 항일활동을 벌인 조용하 지사(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는 복원 전후의 사진이 크게 달라 눈길을 끈다. 조용하 지사의 수의(囚衣) 사진에는 얼굴의 절반 정도가 점으로 덮여 있다. 이는 실제 점이 아니라 일경에 체포돼 법정에 서게 되자 “대한사람으로 왜인 판사 앞에 서는 것이 하늘에 부끄럽다”며 스스로 먹물을 얼굴에 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원록 지사(시인 이육사,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는 본인의 시 ‘청포도’ 속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라는 구절처럼 쪽빛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복원됐다.
빛바랜 죄수복 대신 고운 한복을 입은 영웅들의 모습은 온라인 사진전(처음입는광복.com)과 다큐멘터리 영상을 중심으로 누리소통망(SNS) 콘텐츠, 옥외 광고, TV 광고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볼 수 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울역사박물관을 비롯해 서대문역·독립문역·광화문역·동작역 등 주요 지하철역 바닥 면에는 당시 옥중 생활을 가늠해볼 수 있도록 실제 옥사와 같은 크기로 제작한 옥외 광고가 설치됐다. 또한 복원된 사진은 액자로 제작돼 후손들에게 전달되고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내에도 등록된다.
87명의 사진 복원에 쓰인 한복은 김혜순(66) 명장의 작품이다. 김 명장은 한국인 디자이너 최초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초청 패션쇼를 진행하고 세계 25개 도시에서 50회 이상의 초청 한복 패션쇼와 전시를 했다. 김 명장은 “이분들이 살아서 광복을 맞이했다면 어떤 옷을 입었을까 고민했다”며 “그들의 마음을 담아 아주 귀한 옷감, 최고의 옷으로 지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웅을 위한 옷이기에 지난 4개월간 직접 옷감을 골라 염색하고 손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해가며 정성을 쏟았다. 김 명장은 생존 애국지사를 위한 한복도 만들었다. 현재 생존 애국지사는 국내 5명, 국외 1명 등 6명이다. 광복절을 맞아 이들에게도 김 명장의 한복이 전달된다.
‘처음 입는 광복’ 캠페인 제안을 받고 어땠나?
나라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을 위한 일이 아닌가. 계산하거나 고민할 것도 없이 이 일은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40년 넘게 한복을 짓고 연구해왔지만 한복으로 이런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영광이다. 좋은 기회가 온 만큼 독립유공자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옷을 지어드리고 싶었다.
죄수복을 입은 독립운동가의 마지막 모습을 본 느낌은?
영웅들의 마지막이 어쩌다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남은 건지 안타깝고 속상했다. 영웅이 아니라 영락없는 죄수의 모습이었다. 초라한 모습 너머 놀라고 두려운 표정에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그들 덕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게 아닌가. 죄수복을 입은 모습이 아니라 영웅다운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멋진 한복을 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복을 디자인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포인트가 있나?
자기 목숨이 아깝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의 정신과 굳은 의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들의 희생을 옷으로 보상해주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가장 좋은 실크 소재를 선택했고 소목빛(나라를 위한 희생정신), 쪽빛(어려운 환경 속 피어났던 절개), 치자빛(독립을 위한 간절한 희망) 등 의미 있는 색상을 사용했다. 독립운동의 의미와 상징성을 한복의 옷감과 색, 주요 염료로 표현했다.
두루마기나 도포 등 다양한 구성이 돋보인다.
예로부터 옷은 신분을 상징했다. 독립유공자들이 살아서 광복을 맞았더라면 최고의 신분에 올랐을 것이다. 최고의 신분일수록 옷을 갖춰입어야 한다. 양반가 남성들이 입는 바지, 저고리, 조끼, 두루마기, 그 위에 도포까지 만들었다. 여성은 치마와 저고리, 배자, 두루마기까지 만들었다.
작업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내가 만든 옷이 시대와 맞지 않게 과하게 보이진 않을까, 혹여나 독립유공자들이 왜 내게 이런 옷을 입혔냐고 하진 않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 그 시대와 인물에 맞는 옷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과물을 완성해나갈 때마다 힘들지만 보람 있었다.
죄수복 대신 한복을 입은 독립운동가의 사진을 본 소감은?
깜짝 놀랐다. 옷이 주는 힘이 있더라. 이제야 꼭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영웅들이 영웅다운 모습으로 다시 살아났다. 영상을 보면 정말 그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저 옷 한 벌이지만 이것으로 조금이나마 독립유공자들에게 보상을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뿌듯했다.
이번 작업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영웅들의 옷을 만들면서 내가 한복을 하길 정말 잘했구나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아무리 뜻이 있다한들 이런 일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고 이런 캠페인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이번 작업은 어린 손녀도 호기심을 갖고 지켜봤다. 할머니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독립유공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돼서 기쁘다.
한복을 통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우리나라를 위해 6·25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용사에게도 한복을 선물하는 일이다.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다. 그 마음을 한복에 담아주고 싶다. 의미 있는 선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복을 오랫동안 짓다 보니 갖고 있는 옷감이 엄청나게 많다. 이 옷감을 좋은 일에 쓰고 싶다. 이번 캠페인을 하면서 마음이 확고해졌다. 해외에 있는 국가유공자들에게도 한복을 선물해 주고 싶다.
강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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