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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1800만원 집 샀더니, 전 주인할머니 살림도 물려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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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피로드
댓글 0건 조회 211회 작성일 23-08-15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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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한옥 본채 내부. 전 집주인 할머니가 자녀들을 키울 때 쓰시던 책상 등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썼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상주한옥 본채 내부. 전 집주인 할머니가 자녀들을 키울 때 쓰시던 책상 등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썼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대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새벽 6시 출근, 밤 12시 퇴근. 회사에서 얻은 ‘최연소 팀장’이란 별명과 500여만원의 월급. 점심 먹고 커피 한잔,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네일미용 서비스를 받는 일상이었다. 하루는 서점에 놓인 <2천만원으로 시골집 한 채 샀습니다>(오미숙 지음, 포북 펴냄)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에 살던 주부가 최소한의 예산으로 시골집을 마련해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산다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문득 어릴 때 방학이면 한 달씩 머무르곤 했던 경북 고령군 외할머니댁이 떠올랐다. 넓은 마당에 피어 있던 아기자기한 꽃, 아궁이, 구들방, 초가집…. 더 늦기 전에 ‘원하던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 시골집을 사야겠다.’ 그리고 이 로망을 실현하는 데 10년 가까이 걸렸다. 1800만원에 경북 상주의 시골집을 덜컥 산 김수란(39)씨 이야기다.

■ 70살 넘은 집을 샀습니다 

2023년 7월21일 낮, 용담3리에 있는 김수란씨의 시골집 ‘상주한옥’을 찾았다. 소 축사, 초록 들판, 배나무밭을 지나자 마을회관과 정미소 사이에 있는 작은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울타리를 따라 심은 노란 꽃과 대문 앞의 주황빛 능소화가, 꽃을 좋아하고 부지런한 집주인의 성격을 보여줬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시골집 본채와 별채, 하늘색 타일의 수영장, 초록빛 붉은빛 토마토가 얽힌 작은 텃밭이 나왔다.

“2020년 10월 이 집을 샀어요. 무너지기 직전이라서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집이었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화장실이 항아리 묻어놓고 나무판자 2개 올려놓은 재래식이었어요. 그 화장실 벽도 다 바스러지고 있었죠. 저는 예산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골랐죠. 고치는 데 2년 넘게 걸렸어요.”

1년 반 동안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던, 70살 넘은 집을 사야겠다고 결심한 건 ‘꽃’ 때문이었다. 전 집주인 93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푸릇한 텃밭도 정겨웠지만, 특히나 집 주변부에 얽혀 있는 빨간 장미 덩굴이 한눈에 꽂혔다.

수리 전 상주 한옥 모습. 김수란씨 제공
수리 전 상주 한옥 모습. 김수란씨 제공

경북 상주 ‘1800만원’ 시골집의 리모델링 뒤 모습. 출처 인스타그램 @sangju_hanok
경북 상주 ‘1800만원’ 시골집의 리모델링 뒤 모습. 출처 인스타그램 @sangju_hanok

“그땐 이렇게 손이 많이 갈 줄 몰랐죠. 원래 수리 예산을 1천만원으로 잡았는데 지붕 공사, 마당 공사, 주차장 공사, 배관 공사, 정화조 묻는 것까지 계속 추가되면서 3천만원 넘게 들었어요. 아버지랑 온 가족이 직접 수리를 많이 해서 그래도 돈을 많이 아낀 거예요.”

집 안 구석구석엔 ‘손수’ 고친 흔적이 배어 있었다. 마당의 수영장 겸 노천탕 내벽 하늘색 타일은 직접 붙인 티가 날 정도로 울퉁불퉁했지만 근사했다. 본채는 작아도 층고가 높고 서까래가 있어 보기 답답하지 않았다.

볏단에 황토를 바른 옛집 천장은 서까래를 살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구멍이 큰 곳은 황토와 섬유를 섞어 메웠다. 폐업한 가게에서 싸게 산 샹들리에까지 다니 오래된 천장이 꽤 그럴듯해졌다. 특히 전 집주인 할머니가 남긴 가구를 버리지 않고 깨끗하게 닦고 손봐서 배치했더니 집 안 운치가 더해졌다.

■ 낭만 편 : 물놀이 가능한 마당, 오래된 전축, 천체망원경

“집을 매물로 내놓은 자녀분들에게 가구를 써도 되는지 물어봤는데 ‘젊은 사람이 새 물건 사지 않고 쓴다’며 오히려 고마워하더라고요.”

집주인 할머니가 남긴 전축은 음악을 좋아하는 그에게 보물처럼 느껴졌다. 부업으로 ‘음악 크리에이터’를 오래전부터 해서, 1990∼2000년대 가수들 카세트테이프, 팝송 엘피(LP)판 등을 꽤 모은 터였다. 상주한옥에 묵으러 오는 사람들은 종종 이 수리한 전축으로 음악을 듣기도 했다. 시골 밤은 도시의 밤과 달리 별이 잘 보여, 집 한편에 놔둔 작은 천체망원경과 함께 즐기기도 좋았다.

할머니가 남긴 장식장도 아랫단 서랍만 하나 잘라내고 살렸다. 장식장에 찻잔, 카세트테이프, 엘피판을 놓으니 잘 어울렸다. 할머니가 자식들 키울 때 공부할 수 있게 마련해줬다는 작은 나무 책상과 의자도 버리지 않고 방 한편에 뒀다. 알던 분은 아니지만 자식들을 키워낸 기억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상주한옥 본채 내부에 전 집주인 할머니가 남기신 장식장과 전축.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상주한옥 본채 내부에 전 집주인 할머니가 남기신 장식장과 전축.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정다운 집은 사람을 부른다. 도시에 사는 친구들은 이 집이 좋아 1년에 네 번 이상 모이게 됐다. 여름밤, 본채 앞에 있는 툇마루에서 고기를 굽고 맥주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오면 물놀이장도 개장이다.

“서울·경기, 대구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1박 하고 가요. 저는 애가 없지만 친구들은 애들이 8살, 10살 이렇거든요. 수영장에 물 받아서 애들끼리 물놀이할 때 우리는 고기 구워서 맥주 한잔하면서, 그럼 육아 휴식이잖아요. 또 수영장이 바로 앞이니까 물놀이하는 걸 지켜볼 수도 있고. 도시랑은 정말 다른 게 열섬 현상이 적으니까 저녁 7시30분쯤 되면 선선해요.” 

상주한옥 마당의 수영장. 온 가족이 직접 만들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상주한옥 마당의 수영장. 온 가족이 직접 만들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바비큐와 수영장이 여름 시골집의 매력이라면, 겨울 시골집의 매력은 또 다르다. 그는 집을 수리하면서 땔감을 넣는 아궁이를 없애지 않고 원형 그대로 살렸다. 아궁이에 지핀 불이 구들장을 덥혀 별채를 난방하면, 위 공기는 서늘한데 바닥은 뜨뜻한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 텃밭 옆에 앉아 ‘불멍’을 즐기기도 하고, 은박에 싼 고구마나 쫀드기, 마시멜로를 구워먹기도 한다.

■ 수리 편 : 배수, 정화조, 화장실 벽

“처음에 마당에 흙이 있는데 배수가 안 되니 비가 오면 진흙 상태인 거예요. 지대가 낮은 집이었어요. 아버지가 보시더니 ‘비 많이 오면 물난리 나겠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레미콘 차 직접 섭외해서 시멘트 붓고 나무 밀대로 밀었어요. 물 빠지는 구멍도 손 미장 작업을 아버지가 해주셨어요.”

현대식 화장실이 없는 곳에 화장실을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배관 공사를 하고, 10인용짜리 정화조를 묻었다. 처음엔 사업자들이 다들 안 하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집이 땅보다 높아야 공사하는데, 땅보다 낮은 데 집이 있으면 물이 빠져나갈 길을 찾기 쉽지 않다는 이유였다. 다행히 수소문 끝에 상주에서 30년 이상 시골집만 작업한 사업자를 찾아 공사를 무사히 마쳤다.

“진짜 중요한 게 있어요. 저희 별채 뒤에 논이 있잖아요. 살 때 저는 모르고 샀는데, 그 별채 뒤 논에 수로가 있었어요. 그 물길이 없었으면 화장실 공사를 못할 수도 있었어요. 집에서 물이 나가는 걸 허가 없이 하면 안 돼요. 배출되는 데가 있고 안 되는 데도 있어요. 서류작업까지 있어서 불법이 되지 않게 사업자를 잘 구해야 해요.”

공사할 때의 상주한옥 모습. 본채와 별채에서 쏟아져 나온 철거 폐자재와 전 집주인이 남긴 땔감이 마당에 쌓여 있다. 김수란씨 제공
공사할 때의 상주한옥 모습. 본채와 별채에서 쏟아져 나온 철거 폐자재와 전 집주인이 남긴 땔감이 마당에 쌓여 있다. 김수란씨 제공

화장실은 왕겨 보관 창고를 고쳐 만들었다. 전 집주인 할머니가 오래전 소를 키울 때 인분과 왕겨를 섞어 퇴비로 만들기 위해 쓰던 공간이었다. 바스러진 옛날 황토 벽돌 주변을 나무판과 각목을 고정하고 틀에 시멘트를 부어 기초 틀을 만들었다. 시멘트 벽돌을 쌓고 중간에 두꺼운 단열재를 넣고 다시 작은 벽돌을 쌓아 내부를 미장했다. 욕실 하부장은 당근마켓에서 5만원 주고 사서 만들고, 타일도 직접 붙였다. 무엇 하나 쉬운 건 없었다.

“저도 외할머니댁을 보고 자라서 시골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죠. 수리만이 아니라 관리도요. 예를 들어 잡초는 여름에 비 한 번만 오고 나면 무성해져요. 지난주에 다 뽑았는데 그새 또 자랐어요. 잡초를 자주 뽑아야 하는데 결국 포기했어요. 텃밭 가꾸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토마토도 그냥 놔뒀는데 저렇게 스스로 자라고 열매가 떨어지고 해요. 오늘 저 안에 보니 작은 개구리들도 살고, 벌레도 정말 많죠.”

■ 발품 편 : 구멍가게 같은 부동산을 찾아가세요

쉽지 않을지라도 시골집을 꿈꾼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일단 발품을 정말 많이 팔아야 해요. 자기가 가고 싶은 지역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럼 그 지역 그 동에 있는 부동산들에 가요. 이때 팁이라면, 저는 깔끔하고 세련된 부동산보다 아주 오래된, 허름한 구멍가게 같은 부동산들을 찾아다녔어요. 그런 부동산이 30년 이상 그 자리에 있으면서 동네 사정을 정말 잘 아는 곳이거든요. 오래된 부동산의 연세 많은 어르신들은 인터넷 매물 등록을 못해서 손으로 그냥 매물을 적어 벽에 붙여놓기도 하세요. 시골엔 네이버 매물에 올라와 있지 않은 집도 많아요.”

수란씨도 경북 문경 쪽으로 갈까 했는데 시세가 너무 비쌌다. 마당 20∼30평에 10평짜리 집이 싸도 6천∼7천만원 했다. 지금 집은 대지 70평이 좀 넘고 본채 10평, 별채 7평이니 이에 비하면 굉장히 싼 편이었다.

“보통 마당 30평짜리 리모델링한 시골집 시세가 1억2천만원 하거든요. 고치는 데 노력은 많이 들었지만 싸게 샀어요. 차 타고 다니면 상주 이마트까지 15분이에요. 상주 시내도 15분, 문경 시내도 15분이라 위치가 괜찮다 싶었어요. 나이가 들면 병원도 생각해야 하고, 제가 또 여행을 좋아해서 공항과의 거리도 생각했고. 여러모로 여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자신이 이사할 동네의 분위기부터 파악해야 한다. 공사하면서 마을회관을 찾아가고 이장님에게 인사하면서 시골 마을을 알아갔다.

“공사 기간이 길어서 동네 어르신들한테 정식 인사는 작년 10월에 했어요. 저희 오기 전엔 마을에서 60대인 분이 막내였대요. 초코파이, 떡, 음료수, 맥주 이런 어르신들 간식을 준비했는데 20명, 30명 모이셔서 이야기 나누면서 다 드시더라고요. 마을회관에서 매일 밥도 하신다고 해요. 도시랑 이웃 관계가 완전 다른 거죠.” 

상주한옥 입구.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상주한옥 입구.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도시에선 출퇴근길 거리에서 먹고 마시며 흘리는 돈이 많았는데 시골로 오자 바뀌었다. 시골 인심 덕에 먹을 걱정을 좀 덜었다.

“이사 오니까 먹을 걸 자꾸 갖다주세요. 호박도 주시고 고추, 옥수수, 상추도 주고. 쌀도 한 포대 갖다준 분도 있고요. 저는 그럼 드릴 게 없으니 여행 다녀오면 외국 과자 이런 거 맛보시라고 사다드리기도 하고요.”

■ 집에 얽매이지 않는 삶

직장 생활은 20대 초반 시작해 32살에 끝냈다. 세 곳의 직장을 다녔고, 전부 다른 일이었다. 대형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하는 정보기술(IT) 회사에서 5년 넘게 일했고, 금융회사에서 일할 땐 수입이 넉넉해 부모님 빚도 갚아드렸다. ‘워라밸’을 위해 병원 코디네이터로 직업을 바꿨을 땐 건강검진을 하다 산부인과 질환을 발견하고 큰 수술을 했다. 예전같지 않은 건강에 도시 직장인 생활을 접었다.

이제는 상주한옥 별채에 주 2회 정도 에어비앤비 손님을 받는 식으로 돈을 번다. 어릴 때부터 취미로 해온 ‘음악 크리에이터’ 일도 큰돈은 아니지만 생계에 보탬이 된다. 그래도 가끔 상주에 새로 생긴 카페에서 시골 풍경을 즐길 수 있고, 길냥이들에게 사료도 사 먹일 수 있다.

올해로 직장인의 삶을 벗어난 지 9년차. 이제는 집에 얽매이지 않고 한두 달씩 국외에 머무르며 일상을 보낼 때도 많다. 휴양지에서 비싼 밥과 호텔을 즐기는 여행이 아닌, 동남아 산간 지역에서 느지막이 일어나 어느 노천카페에 앉아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길을 걷다 죽을 사먹기도 하는 식이다.

“저는 아이가 없잖아요. 그런데 아이가 있는 친구들은 교육 때문에 도시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하고요. 아이 키우면서 여행 나가기도 쉽지 않다고 하고요. 그런데 제가 저번에 깜짝 놀란 게, 독일에서 어느 남성이 갓난아이를 앞에 메고 3살, 6살쯤 돼 보이는 자녀 손 잡고 캠핑가방을 멘 채 여행하더라고요. 저도 6살 조카와 여행 가본 적이 있는데, 아이들은 생각보다 외국에 나가면 정말 의젓해지는 것 같아요. 처음엔 힘들겠지만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수란씨는 정성스레 시골집을 가꾸었지만, ‘집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산다. 아기자기한 시골집을 가져서 넉넉한 삶이 아닌, ‘얽매이지 않아서’ 넉넉한 삶이다. 그는 그런 삶이 특별하지 않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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